스마트 조명을 앱 없이 손으로 — AR로 스위치를 지워 본 기록

스마트 조명으로 불 하나 끄는 절차를 떠올려 보자.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고, 잠금을 풀고, 앱을 찾고, 목록에서 방을 고르고, 슬라이더를 민다.
벽에 있던 스위치를 주머니로 옮겼을 뿐인데 단계는 오히려 늘었다. 그리고 그동안 눈은 방이 아니라 손안의 화면을 보고 있다. 정작 바뀌는 건 방인데 방을 안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AR 헤드셋으로 조명 하나를 손으로 다뤄 봤다. 스위치를 빼고, 앱을 빼고, 마지막엔 다이얼까지 뺐다. 이 글은 그 기록이다.

왜 하필 조명이었나
빛은 매일 다루면서 한 번도 직접 만져 본 적 없는 것이다.
우리는 빛을 켜지 않는다. 스위치를 켠다. 스위치는 빛의 대리인이고, 대리인에게는 자리가 있다. 방에 들어와 불을 켜려면 문 옆으로 가야 한다. 조명이 저쪽 구석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빛이 있는 곳이 아니라 대리인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스마트폰 앱은 이 대리인을 벽에서 떼어 주머니에 넣은 것뿐이다. 관계는 그대로인데 한 겹이 늘었다. 대리인은 편리한 대신 거리를 만든다. 의도와 결과 사이에 물건이 하나씩 놓인다.
조명은 그 거리를 재 보기에 가장 단순한 대상이었다.
첫 번째 — 다이얼을 허공에 띄웠다
처음 만든 건 대리인을 벽에서 떼어 허공에 놓는 방식이다.
색상환이 눈앞에 떠 있고 몸을 따라온다. 손가락으로 집어 돌리면 색이 바뀐다. 스위치의 자리가 없어졌다. 방 어디에 서 있든 조작할 것이 앞으로 온다.
여기까지는 예상한 대로였다. 앱보다 단계가 줄었고, 폰을 꺼낼 일이 없어졌다.
그런데 쓰다 보니 걸리는 게 있었다. 다이얼은 여전히 물건이었다. 눈앞에 떠 있는, 만져야 하는 대상. 위치만 바뀌었지 대리인은 그대로 있었다.
두 번째 — 다이얼도 지웠다
그래서 한 걸음 더 갔다. 화면에 아무것도 없게 만들었다.
- 왼손 엄지와 검지를 벌리면 밝아지고, 붙이면 어두워진다
- 오른손을 문 손잡이 돌리듯 비틀면 색이 돈다
- 손끝에 지금 값이 작게 떠 있을 뿐, 조작할 물건은 없다

손이 다이얼이 됐다. 정확히는 다이얼이라는 개념이 없어지고 동작만 남았다.
예상 못 한 게 하나 나왔다
만들 때는 생각 못 했던 차이가 쓰면서 드러났다.
스위치는 누르는 물건이다. 누름에는 끝이 있다. 딸깍 하고 멈추는 지점이 있고, 켜짐과 꺼짐 둘뿐이다.
반면 손을 벌리고 비트는 동작에는 끝이 없다. 조금 더, 조금만 덜. 몸은 숫자 없이도 그 조금을 안다.
빛은 원래 연속적이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가는 데는 스위치가 없다. 켜짐과 꺼짐이라는 이분법은 빛의 성질이 아니라 전기 스위치의 성질이었다. 편의를 위해 연속적인 걸 두 칸으로 접어 두고, 그 접힌 상태에 익숙해진 것이다.
손으로 빛을 다루면 그 접힘이 펴진다.
조작 장치가 사람의 자세를 정한다
집에 있는 조작 장치는 다 자리를 가지고 있다. 스위치는 문 옆, 리모컨은 소파 옆, 온도조절기는 복도 벽. 우리는 그 자리를 외우고 있고 몸이 그 자리를 향해 움직인다.
뒤집어 보면 집이 우리 동선을 정해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위치가 문 옆에 있으니 방에 들어온 사람은 문 옆으로 손을 뻗는다. 조작 장치의 위치가 사람의 자세를 결정한다.
만든 것에는 자리가 없다. 조작할 게 몸을 따라온다. 방 한가운데 서서도, 소파에 누워서도 같은 동작으로 같은 일을 한다.
방이 조작 장치의 지도이기를 그만두면, 방은 다시 그냥 방이 된다.

잘 쓰이는 도구는 눈에 안 보인다
잘 쓰이는 망치는 의식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못을 박는 사람은 망치를 보지 않는다. 못을 본다. 망치가 눈에 들어오는 건 그게 부러졌을 때, 도구가 도구이기를 멈추고 물건이 될 때다.
인터페이스도 비슷하다. 화면을 잘 만들수록 사람들은 화면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는 건 그 화면으로 한 일이다.
두 번째 방식을 쓰면 그 말이 실감난다. 눈앞에 볼 게 거의 없으니 시선이 갈 데가 하나뿐이다. 방 안의 조명. 손을 비틀면 저쪽에서 빛이 따라 돈다. 보고 있는 게 UI가 아니라 방의 변화다.
앱이 시선을 화면으로 끌어당겼다면 이 방식은 시선을 방으로 돌려보낸다. 조작하는 동안 결과를 보고 있는 것. 스마트폰 앱과의 가장 큰 차이고, 어쩌면 유일하게 중요한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전부 손짓으로 하면 되나
아니다. 여기가 이 실험에서 가장 실용적인 결론이다.
은행 이체를 손짓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 되돌릴 수 없는 일에는 딸깍 하고 멈추는 지점이 필요하다. 손을 조금 더 벌렸다고 송금액이 조금 더 늘어나면 안 된다.
정리하면 이렇게 갈린다.
| 맞는 대상 | 안 맞는 대상 | |
|---|---|---|
| 성질 | 연속적 | 결정적 |
| 예 | 밝기, 색, 음량, 온도 | 송금, 삭제, 결제, 전송 |
| 필요한 것 | 미세한 조절, 즉각적 피드백 | 확인, 멈춤, 되돌리기 |
| 실수했을 때 | 다시 돌리면 됨 | 되돌릴 수 없음 |
연속적인 건 연속적으로, 결정적인 건 결정적으로. 매체와 동작이 맞아야 한다.
제스처 인터페이스가 실패하는 대부분의 사례는 기술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이 짝이 안 맞아서다. 손짓으로 메뉴를 고르게 만들면 사람은 허공에서 버튼을 누르게 된다. 누름에는 촉각 피드백이 필요한데 허공에는 그게 없다.
빛은 연속적이다. 그래서 손에 맞았다.
스마트홈 앱이 불편한 진짜 이유
이 실험을 하고 나서 기존 스마트홈 앱들의 불편함이 다르게 보였다.
문제는 단계가 많아서가 아니다. 조작하는 동안 결과를 못 보는 것이다. 슬라이더를 미는 손가락은 화면 위에 있고, 바뀌는 빛은 등 뒤에 있다. 피드백 루프가 끊겨 있다.
음성 명령도 같은 문제를 다르게 겪는다. "거실 불 50%로 해줘"는 숫자를 먼저 정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50%가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보면서 맞추는 것과 미리 정해서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조절에는 눈과 손이 같은 곳에 있어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AR 헤드셋 없이 비슷한 걸 할 수 있나? 지금 기술로는 어렵다. 핵심이 손 위치와 조명이 같은 공간 좌표에 있다는 것인데, 폰 화면으로는 그게 안 된다. 다만 결과를 보면서 조절한다는 원칙만 가져와도 앱은 나아진다. 예를 들어 슬라이더를 미는 동안 화면이 아니라 실제 조명을 보게 만드는 배치 정도는 폰에서도 가능하다.
조명 말고 다른 데도 쓸 수 있나? 연속적인 값이라면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음량, 온도, 블라인드 각도, 스피커 밸런스. 반대로 기기를 켜고 끄거나 모드를 고르는 일처럼 선택지가 몇 개로 나뉘는 조작은 이 방식이 오히려 불편하다.
손이 피곤하지 않나? 허공에 팔을 오래 들고 있으면 피곤하다. 고릴라 암이라고 부르는 문제다. 다만 조명 조절은 몇 초 안에 끝나는 일이라 이 프로토타입에서는 크게 걸리지 않았다. 몇 분씩 붙잡고 있어야 하는 작업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프로토타입을 써 볼 수 있나? 공개된 제품이 아니라 룬샷스튜디오에서 만든 실험이다. 동작은 본문의 영상 두 개에서 확인할 수 있고, 비슷한 걸 만들어야 할 일이 있으면 문의는 받는다.
남는 질문
조명 하나 다루는 작은 프로토타입이다. 그래도 확인해 보고 싶었던 건 조명보다 넓은 것이었다. 현실의 것을 다루는 데 인터페이스가 얼마나 적어도 되는가.
스위치를 빼고, 앱을 빼고, 마지막엔 다이얼까지 뺐다. 빼고 남은 건 손과 빛이었고, 그걸로 충분했다.
다른 공간이 이미 여기 겹쳐 있다면, 남는 질문은 하나다. 그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만지고 싶은가.
우선은 빛이었다.
만드는 쪽
룬샷스튜디오는 AR과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다룬다.
비슷한 걸 만들어 보고 싶거나 공간·전시·제품에 이런 인터페이스를 얹을 일이 있으면 아래에서 문의하면 된다.
출처
- Project 10: Portals — 이 작업의 출발점이 된 브렌던(@builtwbrendan)의 프로젝션 맵핑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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